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독일에서도 증권집단소송 제기

 

지난 1. 17.자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미 환경보호청(EPA)의 발표로 촉발된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으로 인해 스캔들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뿐 아니라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독일 본토에서도 증권집단소송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독일에서 진행될 증권집단소송에는 독일 투자자 뿐 아니라 미국의 기관투자자들 역시 상당수 원고로 포함될 것이라고 알려져 주의를 끈다.

 

이미 폭스바겐 스캔들로 인해 수십 건의 집단소송이 미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미국 투자자들이 증거개시제도, 배심제도, 강력한 증권거래법 등 증권집단소송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의 집단소송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미국의 집단소송제와 비교하여 독일의 집단소송제가 가진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국의 투자자들이 독일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폭스바겐 스캔들은 2015. 9. 18. 미 환경보호청이 폭스바겐에 디젤가스 배출 조작을 이유로 조사명령을 발하고 이에 대한 폭스바겐의 전격적인 자인(自認)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문제가 된 폭스바겐 차량 구매자들을 비롯하여, 미국 주정부 및 연방정부는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고, 스캔들 이전에 비해 2/3 수준으로 하락한 주가로 인해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 역시 증권거래법 10(b) 등을 근거로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미국에서 제기한 증권집단소송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사실 폭스바겐이 독일에서 직접 발행한 증권을 매수한 자들이 아니고, 폭스바겐의 ADR*매수자들이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 스캔들로 인한 첫 증권집단소송 대리를 맡은 로펌 Robbins Geller Rudman & Dowd의 소송인단 모집 공고를 보면, 미국 내에서 거래되는 폭스바겐 ADR 투자자만이 모집대상에 해당할 뿐, 그 외 미국 외 시장(즉, 독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폭스바겐 증권의 투자자들은 모집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는 2010년 Morrison 판례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이전까지는 미국 외에서 거래한 증권의 경우에도 당해 증권의 발행회사가 미국과 충분한 관련성(conduct & effects test로 판단)이 있다는 점만 입증된다면 미국 증권거래법이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독일에서 직접 폭스바겐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도 미국에서의 소송에 참여가 가능하였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이 2010년 Morrison 사건에서, ‘미 증권거래법의 효력은 타국에서 거래한 증권에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한 이후 타국에서의 증권 매수자들은 더 이상 미국 증권거래법에 기초하여 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제기하더라도 각하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독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폭스바겐 증권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미국 내에서 거래되는 증권을 매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Morrison 판결에 따라 미국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고, 미국이 아닌 독일 본토에서의 집단소송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증권집단소송 VS. 독일의 증권집단소송

 

사실 독일에는 집단소송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 도이치텔레콤 스캔들로 인해 주주들이 제기한 소송이 수천 건에 이르러 혼란이 빚어지자 2005년 독일 의회는 다수의 피해자를 위해 간단하고 효율적인 권리실현 방안의 하나로 증권분야에 국한하여 미국식 집단소송과 유사한 KapMuG(Kapitalanleger-Musterverfahrensgesetz, 자본 투자자 표본절차법)을 제정·시행하였고, 이로써 독일에 집단소송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된 것이다. (사실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고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비록 미국식 집단소송제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미국의 그것과 비교하여 독일의 집단소송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무엇보다, 유사한 소송들을 하나로 묶어 이 중 모델 케이스를 선별하여 고등법원에서 쟁점 문제에 대해 재판한 뒤 그 결과에 따라 각 개별소송별로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개별소송의 구조가 잔존하는 독특한 양상을 지닌다. 이러한 소송 구조상, 피해자가 제외신고를 하지 않는 한 소송에 당사자로 참가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들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미국의 제도와 달리(Opt-out 방식), 독일의 경우에는 소송에 당사자로 참가 신청한 피해자들에게만 판결의 효력이 미치게 된다(Opt-in 방식). 또한, 소송을 화해로 종결짓기 위해서 최소한 70% 이상의 당사자들이 동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송에 참여한 대표 당사자를 비롯한 운영 위원회에서 제출한 화해안에 대하여 법원의 허가만 있으면 화해로 종결되는 미국의 경우와 차이가 난다. 그 외, 변호사 보수와 관련하여서도, 미국의 경우 성공보수 약정이 당연히 인정되는 반면, 독일의 경우에는 특수한 상황 외에는 성공보수 약정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집단소송에 대한 변호사들의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물론, 이에 대한 우회적인 수단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소송 펀드와 같이 제삼자가 소송비용을 지원하게 될 경우 성공 보수 약정이 가능하다)

 

비록 피해자들의 효율적인 권리구제를 위해서 도입되었지만, 독일의 KapMuG는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이지 못하였다고 평가된다. 그 단적인 예로, KapMuG 도입의 발단이 된 도이치텔레콤 사건을 들 수 있는데, 미국에서 도이치텔레콤을 상대로 제기된 집단소송이 2005년 소송이 제기된 지 5년이 채 못 되어 1억 2천만불에 화해로 종결 된 반면, 독일에서는 2012년에야 겨우 모델 케이스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져 (그것도 도이치텔레콤의 승소로 끝났다!) 효율적인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도입된 취지가 무색하게 된 바 있다.

 

그러나, 독일 의회는 그러한 비판을 인지하고, 2012년 KapMuG 개정을 통해 절차의 신속 및 간이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 내지 개정하였고, 이번 폭스바겐 소송이 개정된 KapMuG에 기초하여 제기되는 첫 번째 집단소송에 해당한다. 과연 독일에서의 소송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미국와 독일간 집단소송제 대결의 2차 라운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이번 소송의 향후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김성훈 회계사 shkim@yiri.co.kr】